부도 윤숙이네 칼국수 먹고 집에 오는 길에,

남양 성모성지에 들렀습니다. 대만, 말레이시아 단체 여행객이 이미 성지 순례 중이더군요.

아마도 프란치스코 교황님 방한에 맞추어 성지순례차 한국을 방문한 가톨릭 신자들인 것 같습니다.

현지인 신부님과 수녀님도 여럿 계셨거든요.








..정말 아름답게 잘 가꾼 곳입니다. 역시, 성지중의 성지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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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3년 이전까지 그리스도교의 총본산이었던 성 소피아 대성당(훗날 모스크로 개조되었다)

스탄불의 본래 이름은 콘스탄티노플이었습니다.
아마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지금도 정교회 종단에선 콘스탄티노플이란 지명을 사용중입니다.
비잔티움 제국의 초대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1세'는 최초로 종교자유화를 선언한 사람입니다.
이전까지의 로마제국은 철저히 그리스도교를 박해했습니다.
동로마제국,혹은 비잔티움이라 불린 천년제국의 땅 콘스탄티노플.1453년,동방의 오스만투르크제국이 이 땅을 점령했을때만해도 그리스도교인들의 상실감은 그렇게 심각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비잔티움제국을 이루던 태반의 그리스인들은,현명하게도 술탄 메메드2세와의 융화를 시도했습니다.

메드 2세 역시 땅을 차지할지언정,로마시민의 긍지까지 뺏어갈 의향은 없었습니다.그들이 자신을 국가의 지도자로 인정만 해준다면 종교박해를 안겠다고 선언했습니다.도리어 콘스탄티노플 대주교를 메메드2세가 직접 선발하기까지 합니다.현재의 터키인들의 98%이상이 이슬람교입니다.다만,그 성격이 여타 이슬람국가들과 많이 다릅니다.이슬람 온건파인 수니파가 터키 이슬람의 주축이기 때문이지요.덧붙여 터키 근대화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아타튀르크'가 20세기 초, 터키공화국(Republic of Turkey)을 세우면서 정교분리원칙을 헌법으로 못밖은 덕택에 다른 이슬람 국가들처럼 종교지도자가 정부 일에 간섭할 가능성을 사전차단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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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명동 이스탄불 탁심거리(이곳이 이슬람 국가 맞니요? ^^) - gguggu(꾸꾸님사진)


물론 국교는 이슬람이지만 지금의 터키인들은 이슬람교의 교리에 최대한 위배되지 않는선에서,일부 강경파 이슬람교인들이 보기엔 탈이슬람적인 느낌마저 풍깁니다.이스탄불의 번화가 느낌이 여타 이슬람국가들과 확연히 다르다는걸 느낄겁니다.왜냐구요?보통 '이슬람'이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게 마련인 '차도르'를 두른 여성은 극소수입니다.남성,여성 불문하고 의식 및 행동거지가 서유럽인의 그것과 다를게 없습니다.거리는 오색물결로 가득하며,거리는 밤에 더 활기를 띕니다.그렇다고 해서 이들 터키인들이 이슬람교리를 완전 무시하는것도 아닙니다.돼지고기를 절대 먹지 않고,이슬람 예배를 철저히 지킵니다.돼지고기를 대신하여,양고기와 소고기가 주식문화로 자리잡았습니다.동서문물이 집중되는 지정학적 특성상,터키는 미식가들을 위한 요리로 가득합니다.세계 3대 진미 중 하나가 바로 터키라고 불릴 정도이지요.먹을거리로 따지면 세계에 터키를 따라잡을 나라는 중국이나 프랑스밖에 없을겁니다.아마도요.후훗.^^

시 이야기가 다른방향으로 샜지만,터키인들이 이슬람교를 받아들인 방식은 아마도 1453년 오스만투르크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면서 재정립된것 같습니다.물론 선대 터키인들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전혀 없었던것도 아닙니다.선대 술탄들이 그리스도교 보존을 명분으로 남겨둔 성당들은 훗날 많은 수가 이슬람 사원(자미)로 개조되었습니다.'아타튀르크'가 근대화의 닻을 올리고 터키가 공화정을 받아들인 후에도 그리스도교에 장미빛 미래가 있을거라곤 아무도 장담 못했습니다.그래도 여지껏 잘 존속하고 있는 걸 보면,종교의 힘은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이스탄불의 대표적 유물,역사 유적지를 소개합니다.


* 본문의 그리스도교는 정교회를 뜻합니다.당시 비잔티움제국은 가톨릭과 대립관계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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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moba1.tistory.com BlogIcon 외계인타임즈 2008.01.10 00:35 신고

    프라키아님! 노트북 광고 쬐려 보고 계신가요?ㅎㅎ
    터키는 역사시간에 유럽과 동양의 관문이라고 배웠습니다.
    이스탄블 이름만들어도 웬지 신비감이~
    동서양의 완충지역이라 더욱더 다양한 문화들이 있을것같은 예감이내요!
    26일 남으셨내요! 자 오늘도 편안한 밤.

    • Favicon of http://plakia.tistory.com BlogIcon 곰단지 2008.01.10 23:20 신고

      하하.너무 비싸서 쳐다도 안 봅니다.크큿;;
      외계인님이 요렇게 자주 오셔서 댓글남겨주시니,제 글에 더 무게가 실리는 것 같습니다.순전히 제 취향으로 쓴 글이라 글 내용도 뒤죽박죽,지식도 깊지 않구요.하핫.
      제가 댓글이 좀 늦었네요.오늘도 즐거운 밤 되시구요!
      이제 주말이네요.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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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천일의 앤 볼린'헨리8세,메리,앤 볼린 자매이야기를 담고있습니다.
헨리8세의 두번째 부인이었던 앤 볼린은 결혼 후 1000일후 비극적인 죽임을 당합니다.

'나탈리 포트먼''스칼렛 요한슨'이 앤 볼린,메리 볼린 역으로 등장합니다.나탈리양은 '레옹'부터, 스칼렛양은 '진주목걸이..' 부터 열혈 팬이었는데...이렇게 한 작품에 동시 출연하다니!!! 감격입니다.눈물이 앞을 가리는군요.재밌는 건 84년생인 스칼렛이 언니인 메리역을,그리고 81년생 나탈리가 동생인 앤역을 맡았다는 겁니다.얼굴값이 실제 나이값보다 더하단 진리를 보여줍니다..;;

헨리8세는 한 시대를 풍미한 파란만장했던 왕입니다.이혼경력이 화려하죠.당시 시대상황을 보면 이혼이란 당치도 않았습니다.구교로 대표되는 가톨릭이 유럽에서 강세였지만,헨리8세는 신교를 받아들였고 교황의 권력에 대항합니다.교황은 헨리8세가 앤 볼린과의 결혼을 위해 전 부인과의 이혼을 선택했을때 극렬히 반대했습니다.그러나 헨리8세는 교황의 충고따윈 안중에도 없었죠.
그런 헨리8세와 결혼했던 여인이 바로 앤 볼린입니다.

메리와 앤 볼린 두 자매는 헨리8세와의 잠자리 문제로 라이벌관계였습니다.
결국 앤 볼리는 헨리8세와 혼인을 맺게 되지만 정작 왕은 앤이 대를 잇게 할 아들이 아니라 딸을 낳게 되자 그녀를 참수형에 처합니다.간통죄로 말이죠.그런 앤 볼린의 사생아(헨리8세가 그렇게 불렀듯이)가 바로 '엘리자베스1세'여왕입니다.영화 '엘리자베스','골든에이지'로 이어지는 세자르 카푸르감독의 엘리자베스연대기에도 등장합니다.해가지지않는 제국,대영제국의 기틀을 다진 황금시대의 위대한 여왕 엘리자베스1세가 순탄치 못한 유년시절을 보낸건 바로 이같은 이유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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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에이지'도 개봉한 마당에 이 작품의 개봉여부도 희망을 걸어봅니다.비인기장르인 '사극'이지만,
미드열풍의 주역인 '튜더스'영향도 크고 주연배우들 면모도 화려하니 선택권을 쥔 소니픽처스코리아가 알아서 잘 배급해 주시겠지요.(배급시켜주세요,제발...엉엉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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