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Japan Culture Diary

일본 사극에 배워야 할 점


남녀노소 불문하고 한창 주가를 올리는 '추노'라는 인기 드라마가 큰 화젯거리입니다.
작가의 입담이 어찌나 좋은지 1시간여에 이르는 방영 시간이 결코 지루할 틈이 없더군요. 특히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화려한 검술과 액션은 '이게 한국 드라마 맞아?' 하는 찬탄마저 내뱉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일찍이 봐 본적 없는 전혀 다른 사극이 바로 '추노'였던 것입니다. 느낌에서뿐만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그간의 한국 사극과 궤를 달리합니다. 잘생긴 배우가 여럿 출연하지만 죄다 연기파라는 점이 작품의 품격을 높였습니다.
자. 그렇다면 무엇이 불만일까요. '추노'를 딱히 트집 잡을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지적하고픈 건 여태까지 우리네 사극이 보여준 놀라울 정도의 거짓 나부랭이 극에 시청자가 볼모로 잡혀 있단 겁니다. 사극이 '재미'를 추구한다는 것에 이의를 달 생각은 하등 없습니다. 솔직히 까 놓고 말해서, 재미없는 사극을 누가 보겠습니까. 요즘 같은 시대에 '조선왕조 500년' 같은 진국 냄새 진동하는 대하드라마에 열광할 시청자는 그다지 없을 겁니다. 있다 하더라도 시청자층이 엷은 건 당연지사겠지요. 이미 자극적이고 현란한 연출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려면 사극도 변신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시청률에 목숨이 간당간당한 국내 TV 드라마 여건상 자칫하면 중도하차 될 수도 있습니다. 재미가 없다면 말이죠. 재미가 바로 시청률과 연결되는 고리입니다.



'추노'는 사전제작 드라마라는 점에서 시청률과 연관짓기가 다소 애매하지만, 절반 정도의 분량만 이미 촬영해 놓은 상태에서 지금도 촬영 중이라는 걸 고려하면 반쪽짜리 사전제작 드라마라고 단정 지을 수 있습니다. 사극뿐만 아니라 좋은 드라마가 중간에 갑작스레 종방을 맞는 건 우리나 외국이나 그다지 차이 날 게 없습니다. 하지만, 시청률 추이에 따라 드라마 내용에 변덕이 들끓고 캐릭터가 왔다 갔다 하는 이상한 체계는 우리 TV 드라마 말고는 찾아보기 어려울 겁니다. 이렇게 시청률에 목이 멘 형국에서 다소 딱딱한 '사극'이 제자리를 설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일본 사극을 예로 들겠습니다. 요새 들어 부쩍 '에도' 바쿠후 말기를 다룬 대하드라마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바쿠후 말기는 일본 역사상 중요한 분기점이며, 새 일본을 만들어 외세로부터 자국의 입지를 강화한 입지전적의 시대입니다. 격변의 시기였지만 우리 조상은 이렇게 이겨냈다는 강한 자부심이 드라마 곳곳에 보이고요. 이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닙니다. 일본 대하드라마를 비롯하여 대다수 드라마에 알게 모르게 역사의식을 고취한 흔적이 여럿 엿보입니다. 심지어 다소 황당한 설정의 판타지 드라마(사슴 남자)에 조차 '일본'을 구해야 한다는 주인공들이 활약하는 마당에요. 정작 일본인은 이런 부류의 드라마를 하도 많이 봐서 둔감하겠습니다만. 저는 흠칫했습니다. 한두 편에서 받은 느낌이 아닙니다. 대하드라마를 통해 일본 역사에 대해 공부할 수 있어 내심 좋았지만, 한편으론 일본 역사가 얼마나 위대했는지 새삼 놀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과장이 섞이거나 허구적인 설정이 개입하지도 않습니다. 최대한 사실에 입각한데다 역사적 주인공들의 발자취를 헤집고(NHK 대하드라마) 시청자에 소개까지 합니다. 왠지 위화감도 들었지만, 이게 대하드라마가 갖춰야 할 정석이라고 전 생각했습니다.

시청률에서도 승리한 아츠히메. 그 바통을 올해 료마전이 이어받았다.



일본 사극이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하는 대하드라마가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고,
더군다나 내용 역시 고증에 고증을 거듭하되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로 구성하여 작품에 몰입을 증가시킵니다.
우리네처럼 복식부터 의식주까지 따로국밥인데다 현대적인 말투가 난무하는 판타지 사극은 하등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 물론 영화에선 일부 다뤄지기도(고에몬) 합니다만. 장르 자체가 판타지 액션이므로 논외로 치겠습니다.
제가 지적하고 싶은 건 우리 사극의 정통성이 언제부터인가 '재미' 위주로 지나치게 치우쳤다는 겁니다.
우리 역사를 '재미'가 아닌 '자부심'으로 읽을 수 있어야 바람직한 다음 세대를 약속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역사는 굴곡이 많고 이민족의 침략을 수도 없이 겪은 난세의 역사입니다. 영웅적인 인물도 필시 많을 터인데 우린 어째서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목매달고 시청률이라는 난잡한 통계에 좌지우지되는 걸까요. 돈이 우리 역사를 보증할 리 없을 텐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