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각주:1]. 초등학교 5학년, 지방 중소도시였던 광양에서 서울로 이사 온 해이다.
별로 특이할 것 없는 성격과 외모 덕분에 광양에서 학교 다닐 때만 해도 그저 '착한' 아이로만 인식되던 나였다.
말 수도 적어서 저학년 때엔 나 대신 옆 짝꿍이 대신 발표를 해 준 적이 있을 정도로 사람들로부터 주목받는 걸 무서워했다.
그러던 내가 변화를 맞이한 계기가 된 게 바로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나는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난장판 치기 좋아하는 말썽꾸러기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서슴없이 평소 좋아하던 여자애[각주:2] 주변을 맴돌았다. 다분히 불량 끼가 있는 녀석들과 늘 어울려 다니다 보니,
담임 선생님의 눈엣가시가 따로 없었을 정도다. 난 늘 꾸지람을 들었고, 그래도 마냥 좋았다.
그런데 중학교로 진학을 앞두고 큰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 되었다.
더 좋은 학군에 배정받기 위해 조금 떨어진 송파구의 오금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 것이다. 그때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불과 1년 사이에 나는 또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왠지 의기소침해진 것 같았다. 그래도 용기는 남아 있었던지,
학교 반 부회장 선거에 출마했고 당선되고야 말았다. 이것이 발단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건대,
그 당시 내가 부회장이 된 건 반 아이들의 장난기가 발동했기 때문인 것 같다. 행동이 예전보다 지나치게 둔화하였고,
말 수도 점점 줄어들더니 급기야 부회장직을 이끌고 가기가 벅찰 정도로 심적 고통이 나날이 커졌다.

반 아이들의 싸움을 중재하려고 나섰다가 어처구니없는 나의 꼴사나운 행동에 반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되었고,
나는 더더욱 의기소침해졌다.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기가 싫었다. 그래도 선생님께 주목은 받고 싶었던지 발표나 질문은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그렇게 초등학교 시절이 지났다. 너무 많은 변화가 내게 찾아왔다.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꾹꾹 눌러 참았다.
광양에 살던 시절 오줌싸개로 불리며 부모님 속을 애태웠던 기억 때문에라도,
더는 부모님께 잘못하고 싶지 않았던 여린 마음이 발동했던 모양이다. 덕분에 초등학교는 무사히 마쳤지만, 진짜 고통은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찾아왔다.


  1. 초등학교 다니던 해의 연도 수는 유독 기억에 잘 남는다. 그도 그럴 것이 각 연도의 끝자리 숫자가 바로 초등학교 시절 학년이었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2. 지금은 이름이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성이 '황' 씨였고 윤기나는 파마머리를 한 여자애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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